글제목 원료섞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8-11 17:13:00
IP 121.176.150.112 조회수 1613

 

 

 


 

올해 오운산에서 선택한 각 지역에서 생산된 보이차 원료를 일단은 전부 차창으로 보냅니다. 차창의 한 모퉁이에 모차를 배합할 수 있도록 준비된 공간이 있습니다. 사각형으로 낮게 담을 치고 바닥엔 타일을 깔아서 섞을 때 이물질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합니다. 작년까지는 다른 차창과 마찬가지로 큰 삽을 사용했는데 올해부터는 인터넷으로 쇠스랑처럼 생긴 도구를 구입하여 사용했습니다. 병배(拼配) 과정에서 모차의 부러짐을 방지하고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자 고안해낸 방법입니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효과적입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옆집 가게들에서 너도나도 구입해 달라고 합니다. 간단한 것이지만 전통적 방법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좋은 차를 생산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이 있다면 언제든지 시도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지역 같은 차밭에서 같은 날 생산된 차라도 상자마다 약간씩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단주차(單株茶)를 생산해보면 심지어 바로 엽의 한그루 한그루의 차맛 차이도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제품의 균일한 맛을 위해서는 같은 차밭의 차라도 반드시 모든 상자를 열어서 다시 골고루 섞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도 병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차들을 섞어서 일정한 가격과 품질을 맞추기 위한 병배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수차는 단주차를 생산하는 경우 이외에는 일반적으로 채엽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품종과 다양한 수령의 차가 섞입니다. 이렇게 채엽한 잎을 초재소에서 가공하고 쇄청하여 준비된 종이 상자에 비닐 내지를 덧 쉬운 다음 보통 10KG 씩 담습니다. 봄차철에 차농들은 보통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정도 매일같이 찻잎을 따고 살청하여 모차를 생산합니다. 같은 차밭이라도 날씨와 가공방법 등 여러가지 원인에 따라 매일매일 생산한 차맛이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생산한 차를 다시 모두 한데 모아서 골고루 섞어줍니다. 저는 편의상 이 작업을 '1차병배' 혹은 '자연병배' 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종이 상자에 담은 모차를 차창으로 보내어 그 지역의 순료(자연병배)차를 생산합니다.

 

그리고 차창에서 다시 각 지역에서 생산된 순료차(1차병배.자연병배)를 사업자가 추구하는 맛과 가격에 맞추어 병배한 2차병배(산업병배)차를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형 차창에서도 고수차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대형 차창에서 생산되고 있는 대부분의 차들은 2차 병배(산업병배)차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 지역 한마을에서 생산된 원료로는 생산량을 맞추기 어려운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가격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형 차창에서만 고수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수차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정한 고수순료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 이겠지요. 그리고 고수차 비율이 높다고 꼭 좋은 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에 따라 고수차라도 아직 저렴한 것들도 많고 맛없는 고수차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1차병배 즉 '자연병배'를 통해 한마을의 고수차를 생산한다고 해서 꼭 좋은 차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마을의 차가 좋다고 알려져 있더라도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2차 병배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여 더욱 좋을 차를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 최고의 차는 병배를 통해 완성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오로지 사업적 수익 추구를 위해 유명 지역의 고수순료차(1차병배.자연병배)라고 설명하고 2차병배(산업병배)를 통해 생산한 차라면 양심의 문제가 있겠습니다.

차창에서 2차 병배를 할 때에는 정확한 비율을 맞추어 골고루 분배하고 여러 번 뒤집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보통 두세 군데 지역의 차들을 병배 하는데, 지역이 많을수록 골고루 섞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참고로 오운산의 ‘진’은 2018년엔 멍하이의 6개 지역 고수차를 병배 하였는데, 올해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생산량의 감소로 가격이 불안정하고 지역별 맛의 차이 또한 큰 편이라서 좋은 원료를 확보하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이산 저산의 차들을 상자마다 일일이 시음하고 조금씩 구하다 보니 2019년 ‘眞진’ 생산량은 300KG 밖에 안되는데 모두 10개 지역의 고수차 원료가 들어갔습니다.

모두 멍하이 지역이기는 하지만 작년과 같은 차밭의 원료는 세 곳에 불과하고 7개 지역은 모두 다른 차밭의 고수차입니다. 참고로 그 지역의 당해 연도 상황에 따라 차맛은 매년 차이가 있습니다.

보이차 제작에서 다른 과정은 대부분 기계의 힘을 빌려서 생산할 수 있지만 소량의 고수차 병배 과정만큼은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감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대형 차창에서 대량의 모료를 섞을 때는 기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먼저 널찍한 공간에 병배 할 모료 중에서 양이 가장 많은 것부터 맨 아래에 일정한 두께로 넓게 펼쳐줍니다. 그런 다음 열십자로 사람이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듭니다. 그리고 네 부분으로 나눠진 공간에 양이 적은 순서대로 정확히 사등분을 하여 골고루 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 많은 모료를 맨 위에 사등분하여 덮어 줍니다.

그리고 한부분 씩 쇠스랑으로 세 번정도 뒤집어 줍니다. 일차, 이차, 삼차 뒤집기를 한 다음 다시 종이상자에 10KG 씩 담으면 병배가 완료됩니다.

 


간단하게 병배 하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사실은 굉장히 고단한 작업입니다. 특히 뒤집기를 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뿌연 가루들이 날리기 때문에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됩니다. 요즘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나날이 보도되고 있는데, 찻잎 가루라고 해서 먼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주로 찻잎에 붙어있는 백호 즉 하얀 털들이 뒤집는 과정에서 탈락하여 날리는 것입니다. 모차를 분배하는 과정에서도 백호들이 날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주로 병배 과정만 감독하고 뒤집기를 할 때는 직원들에게 꼭 마스크를 하라고 당부하고는 밖으로 도망가는 편입니다만 중간중간에 한번씩 들어와 보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건강에 해롭다고 몇 번이나 당부해도 무작정 괜찮다며 잘 듣지를 않습니다. 특히 오운산은 철저히 병배 하기로 직원들끼리 소문이 나 있어서 때론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병배가 있는 날 저녁엔 꼭 비계살이 많은 삼겹살을 구해서 다같이 구워 먹습니다. 옛날에 광부들이 진폐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먹었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기침을 하면 새까만 가래가 솟아져 나옵니다. 옆에서 감독만 하는 제가 이 정도인데 직원들은 어떨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고 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병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직원들이 차 가루를 마구 뿌립니다. 우리 사장님 고생한 흔적을 남겨야 된답니다... ㅎ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상북로 15 │ TEL: 052-254-4884 │ FAX: 052-264-1012 │ E-MAIL: sacinamu@hanmail.net
대표자:전민정 │ 상호 : 석가명차 │ 사업자번호: 620-04-33069
Copyright (c)TEASHOP All Rights Reserved.